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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though this may seem a paradox, all exact science is dominated by the idea of approximation. When a man tells you that he knows the exact truth about anything, you are safe in inferring that he is an inexact man. - Russell, Bertr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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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삼성을 생각한다

2010/02/16 14:11 | Posted by Econoim
김용철 씀

이 책은 김용철 변호사가 폭로했던 삼성 비리 사건을 중심으로 우리나라의 권력지도가 어떻게 유지되는지에 대해 서술한 글이다. 2007년 10월 29일 삼성비리에 관한 첫 기자회견부터, 2009년 5월 29일(노무현 대통령의 영결식 날짜와 같은 날) 대법원의 에버랜드 CB(전환사채) 저가발행 무죄판결 및 삼성 SDS BW(신주인수권부사채) 사건 유죄판결(파기환송), 2009년 8월 14일 파기환송심 선고의 유죄확정판결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중심으로 서술되어 있다. 물론 그 이후에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 보며, 삼성 입사 이후의 내용도 많이 포함되어있지만, 그런 내용도 결론을 뒷받침하기 위한 (기승전결 중) 기승 쯤 해당된다.

대학교를 졸업하면 가고싶은 기업이 대기업이고, 그 중에서도 삼성인 이유는 대기업은 돈을 많이 주니까. 그리고 삼성에서는 자신이 클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삼성을 나오면 다른 곳에 갈 수 있다는 믿음. 삼성 물건을 사주면 욕은 안먹는다는 믿음. 그래서 기를 쓰고 그들만의 세상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시장의 선택을 따라하면 손해는 보지 않으니까. 그런데, 손해보지 않는 그 계층에 들어가서 (일반적으로는 아니지만,) 사회를 움직이는 수뇌부에 들어간다면, 부당한 방식으로 이득을 취하지 않으면 혹은 그 인맥의 흐름에 끼질 못하면 손해를 보게 된다? 

이제는 유전무죄 무전유죄쯤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사회가 된 것 같다. 책을 읽기 전에도 그랬지만, 책을 읽으니 더욱 그렇게 느껴졌다. 어떤 사건들은 누구나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그냥 진행된다. 그걸 반대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있어도, 그리고 그 목소리가 엄청나게 크다고 하더라도 그냥 진행된다. 도대체 왜 해결을 못하는 것일까? 아무리 돈이 나오는 곳에 의견이 있다고 하더라도 특정 집단의 렌트(지대), 지하경제 이런 게 많은 자본주의 사회는 성장하기 어렵다.

동시에 드는 생각은 도대체 사회의 지도층의 정의는 무엇인가이다. 우리나라에 지도층은 전혀 존경을 받지 못하고 있다. 자본주의의 꽃이라는 기업의 수장도, 나라의 과거/현재/미래라는 사법부, 행정부, 입법부 수장들도 전혀 존경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냥 내 주변에 옳고 아름다운 것을 아는 사람들, 내가 존경하는 분들이 지도층이란 생각이 들었다.

옳고 아름다운 것을 아는 사람들일수록 얌전해서, 때로는 지쳐서, 때로는 더러워서, 그런식으로 묻혀가고 있지만, 그래도 아직은 옳고 아름다운 것이 무엇인지 배우고, 알고 있는 청년층이 많다고 생각한다. 사회가 어려워질수록 더 빛을 발할거고, 그 기폭점이 되는 시점이 가깝지는 않지만 머지도 않았을 것 같다. 삼성그룹의 분식회계가 책에 나온 그 정도라면 말이다. 예를 들어 삼성가의 지분싸움 이런 거 외에 가장 가능한 시나리오로는 사회가 글로벌화되고 개인주의화되고 경쟁이 심해질수록 삼성에서 얻을 거 얻고 나오는 인재가 더 많아진다면 삼성이 장기적으로 유지되기 어려울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이하 책에서 인용: <이코노미스트> 2008년 4월에 따르면, 삼성 특검 수사결과 발표 이후 '삼성의 재앙'이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경고했던 바대로, '언젠가는 재벌 총수들에게 전혀 통제되지 않는 군림을 허용함으로써 야기된 경제적 손해를 고민하게 될 것이다(p97).'

이 책의 가장 강점 중의 하나는 '디테일의 힘'이 살아있다는 것이다. 뭐 이제는 야사가 되어버려 어떤 증거도 확보하기 어려울 지 모르겠다만, 개중에는 당시에 이러면 안되는데.. 하고 넘겼던, 그리고 지금은 잊어버린 그런 사건들도 정리가 되어 있어 또 한번 반성하게 만든다.

책은 너무 흥미진진해서 단숨에 읽었는데, 실장님과 신데렐라가 나오는 흔한 드라마가 아니라 실제 재벌가의 뒷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무슨 조선왕조실록 야사를 보는 듯한 기분으로 읽을 수 있다. ERP 시스템을 도입하는 과정에서 어떤 의사결정이 있었는지, 왜 제일모직이 아직도 촌스러운? 이름을 쓰는지, LG보다 월간 실적이 낮았던 달에 이건희의 반응이라던가, 금산분리완화가 왜 삼성을 위한 제도인지, 회사돈이니까 받아도 된다는 담화들이라던지, 국정원 도청기 전파얘기나, 범죄에 대한 개념이 얼마나 없는지, 등등등 마치 통속적인 소설처럼 뚜렷한 인물묘사나 재벌가 혼맥도까지 양념으로 곁들여져서 시트콤의 에피소드들을 보듯이 재미있는 얘기들이었다. 내가 순진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뒷이야기 이런 건 어느 정도 예상했었지만, 왔다갔다하는 돈의 규모 자체는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이었다. ㅋ

다만, 사업 실패에 대한 이야기들만은 다른 시각이 존재할 수 있을 것 같다. 자동차, 컴퓨터, 텔레비전, 헬리콥터, 자동현상기 등등등 수없이 손댔다가 망한 사례들을 열거하는데 아무리 회장의 독단적인 선택이었다고 하더라도 삼성이니까 그 정도 손실을 감수하면서도 이런 저런 투자를 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투자결정과정은 문제가 있었을지 모르지만, 이건 분식회계도 아니고, 그런 기업가 정신 때문에 지금의 삼성이 있다는 것이 어느정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책에서 기억에 남는 단 하나의 문장을 고르라면, '수사검사가 엉뚱한 욕심을 품고 있지만 않다면, 청탁이 압력이 될 수는 없다.' 라는 말이다. 내가 수사검사가 될 건 아니지만, 어느 영역에 종사를 하든 내가 진짜 조건에 얽매이지 않는 공정한 판단을 내리면서 살고 있는지, 변명은 아닌지, 그렇게 나 자신을 점검하면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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