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우슈비츠 이후 예술은 어디로 가야하는가 이상빈 지음, 책세상문고 이상빈: 한국외대 외국문학연구소 전임연구원. 롤랑바르트가 쓴 롤랑바르트, 문학과 에로티시즘 역. 이산가족의 자식... 총4장으로 이루어짐: 알아두어야 할 몇가지 개념들(아우슈비츠 및 반유대주의에 관하여), 주요 수용소 작가와 작품들, 쇼아를 주제로 한 영화소개, 유대인에 관한 일반적인 고찰. 이렇게 4장으로 구성됨.. 제목을 쉽게 바꾸면: 아우슈비츠 이후 어떻게 그리고 왜 글을 써야 하는가 서론: 전쟁문학이 가지고 있는 한계점 및 특성과 가져야 할 의무에 관해 하나씩 이야기를 풀어놓는 형식. 우리나라도 위안부 할머니(이 책에서 유대인들에 해당하는 경험자,증인,피해자)들께서 돌아가시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시간의 무게에 따라 작가들이 혹은 우리가 지녀야 할 태도를 생각하게 함. 이 글의 논점들: 증언의 아포리. 예술의 사회적 의무. (위안부문제-이 단어나 이 사건은 한 문장도 언급이 없음) 전쟁문학. 소름돋는 질문들: 학살 당시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도록 내버려두었는가? 왜 아우슈비츠가 존재했나? 쇼아는 '증인없는 사건, 그 계획조차 역사적으로 증인을 말소해버리는 사건'을 보여주고 있지 않는가? 이런 것들에 대해 침착하게 대답할 수 있는 '토론을 통한 합의'의 단계에 이르러야만 전범들에 관한 어떤 처벌에 대해 타당한(?) 판결을 내릴 수 있지 않을까? 예술의 사회적 의무: 어떤 텍스트, 형식 때문에..문학 혹은 영상 그런 것들은 역사에 관한 내용을 가지게 되면 형식 때문에라도 하나의 의무를 지게 된다. 그러한 의무에 관해 논하고 있는 책인지도. 모든 기록이 거짓?: 역사는 승리자의 입장에서 씌여졌기 때문에. 혹은 '피수용자의 이야기가 체험한 고통의 절대적 적법성을 보유하고 있다 할지라도(거의 불가능하겠지만?) 그 이야기들은 역사가들의 눈에 '집단적 불행의 개인적 표현'에 불과하기 때문에. 객관적 역사와 주관적 역사 사이의 뒤틀림이 가능하다.' 람세스의 경우: '적어도 문학적, 역사적 제반 상황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한 독자에게는 작품 속에 기술된 허구가 진실로 받아들여질 위험이 있다' 모 단지 이 사실 때문만은 아니더라도, 역사의 소설화가 위험해보이긴 하다. 람세스 경우도 그랬고. 작가의 고민: 공포의 공유?-수용소에 대한 문학적 해석을 둘러싼 텍스트 내외적인 문제들. 작가의 고민은 여기에 드러나있음. 내가 감독이었어도: '나는 이 영화를 만들면서 고통스러워할 필요가 있었다. 나 자신이 고통스러워해야만 영화속에서 그들에 대한 연민이 표현되고, 관객들 역시 일종의 고통을 느끼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를 필름으로 찍고싶었다. 그가 말하는 장면을. 그를 카메라를 통해 죽이고자 했다.-란츠만(쇼아 감독) 범죄의 재구성: *쇼아가 증오에 기초해있고, 따라서 증오를 조장하는 영화라고 평가한 토도로프의 견해가 논쟁적인 것은 사실이다. 왜냐하면 객관성을 지향하는 모든 다큐멘터리 영화도 필연적으로 감독의 의도에 따라 재구성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생각하면 이 세상에 보존되는 어떠한 진실도 없다는 결론에 이를지도? 그럼 이 책을 쓴 작가는 모냐? 나의 결론, 낮은 목소리: (본게 역사스페셜을 제외하고는 그것밖에 없는 것 같다. 쪽팔리다...-.-;;) 켁. 그건 아닐텐데 말이다. 적어도 '낮은 목소리'는 그랬다. 어쨌든 거짓말은 아닌 사실이었다.... 그리고 같은 책을 읽어도 받아들이는 건 모두 다르다. 그냥 그렇다고-.-a 책에서는 결국: 예술의 의무는 예술로 승화를 통한 치유?용서?가 되는 지극히 평범한? 보편적인? 도덕적인.. 결론에 이를 수도...맺는 말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한 것처럼. '그러나 어쩌랴. 시간의 흐름은 필연적으로 문학에 현실의 극복이라는 과제를 점점 더 떠맡기고 있고, 문학과 예술 그 자체가 악을 퇴치하는 유일한 힘이지. 치유의 기능인 것을' 책을 읽고: 어떤 철학적 고민을 하고 싶다. (경제) 공부를 더 해야 겠다.^^ 더 읽어야할책: 프리모레비<만약 인간이라면> 마르크페로<역사와 영화> 엘리위젤 작품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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